Born in Korea, Living in NYC
뉴욕을 떠나기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해요.
이민국에서 변호사의 실수/서류상 오류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을 때 제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어요.
1. Reject 당할 거란 가정하에 답변을 제출하기 전 다니던 회사를 끼고 그린카드 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한다. which means 또 다른 2년이란 시간을 같은 회사에서 썩어(?)야 한다.
2. 이민국에서 그냥 승인해줄 가능성에 베팅하고 답변을 제출한다. 그러나 거절당하면 미국을 떠나야 한다.
두 번째 옵션은 무리수가 따랐죠. 다니던 회사 사정상 제가 떠나 있는 상태에서 그린카드 스폰은 사실상 불가했고, 그 말인즉슨 제가 당장 노동을 제공하지 못하더라도 최대 2년이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스폰해줄 새로운 회사를 찾아야 했으니까요.
당시 제겐 새로운 회사를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렇다고 원하지 않은 회사에서 또다시 2년이란 시간은 더더욱…
7년이란 회사 생활… 신분의 제약, 성별의 제약, 인종의 제약 속 나름 제가 성취하고자 한 타이틀 연봉의 정점(?)을 찍고 난 후… 뭐랄까 알 수 없는 허무함에 허덕이던 시기라 서류상 자유의 몸이 되는 게 간절했었어요. 제 맘 아실거에요… ㅠㅠ
미국에서 쫓겨 날 걱정 없이 쉬고 싶을 때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스폰 걱정 없이 내 포트폴리오만으로 이직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그래서 도박을 했죠. 모든 것을 잃을지라도 자유의 몸이 가장 빠르게 될 수 있는 가능성에 which was the second option. 그 뒤 모든 상황은 아시다시피 뭐…
음… 미국을 떠나며 다짐했어요. 1년 정도는 그냥 여행만 다닐거라고. 그 약속을 지킬 경제적 여유의 대부분은 401K를 깨서 마련했답니다. 노후보장은 개나 주라는… 😭 미국 사회 초년생 여러분, 혹 아직 시작 안 하셨다면 꼭 시작하세요. 나중에 큰 도움이 됩니다. 🙏
서두가 길었죠. 혹시나 누군가에게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참에 정리해서 올리게 됐네요.
지금의 제 상황은 미국에 살때도 그랬지만 하루하루가 멘탈 싸움인 것 같아요.
울어도 지나갈 2년이고 웃어도 지나갈 2년이기에 기왕이면 재밌게 살려고 노력해요.
어느 순간엔 피가 거꾸로 솟아요. 뉴스에서 미쳐 날뛰는 트럼프를 볼 때면 과연 지금 진행 중인 그린카드가 잘 마무리 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엄습하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게 여행밖에 없어서 떠나는 여행이란걸 모르는 친구들은 부럽다고도 하고, 노는것도 하루이틀인데 지겹지 않겠냐며 걱정도 해요.
안물안궁일 수도 있지만 얼마 전 읽은 글을 빌리자면 노는 건 지겨울 수 없어요. 돈 없이 노는 게 지겨울 뿐이죠.
경제적 여유만 허락한다면 전… 지금 이 생활을 평생 지속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요. 아, 물론 자아성취, 인정욕구, 성취욕이 예전처럼 인생에서 큰 의미가 없기에 가능한 말이지만요.
유럽여행 마치고 한국에 오고 나서 며칠 안 지나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미국 살면서 너무 오랜 기간 남들 다하는 사람도리 안 하고 살아서 경조사 경험이 전혀 없는 탓에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 돈은 얼마나 내느냐. 도착해서 뭘 해야 하느냐. 티비에서 보니 화환 보내던데… 그랬더니 엄마가 대뜸 “화환 보내는 사람들 다 변호사 의사 어디 회사 부장 아무개 이렇게 쓰는데, 너 뭐라 쓸래? 무직?”
그때 음… 내가 살면서 한번도 무언가를 성취해 보지 못했다면 (아, 물론 제가 그렇다고 엄청난걸 이룬 건 아니지만…) 이런 순간들에 참 초라했겠다 싶었어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전 지금의 제가 좋아요. 그 화환에 그저 제 이름 석 자만으로도 충분하다 말할 수 있을만큼. 사회적/경제적 관점에서 볼 땐 참으로 쓸모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지만… 그동안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뉴욕이란 곳을 사는 동안 원 없이 누렸기에 지난 시간/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가 지금 이렇게 희망적일 수 있는 건 2년 후 제가 원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겠죠. 이마저도 없었다면… 전 아마 아주 많이 무너졌을 거예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 둘 다 중요한 것 같아요. 막 둘 다 놓치지 않을거에요~ 이런것 같아 살짝 민망… 😅
저는 아직 뉴욕과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자유의 몸이 되었을 때 이뤄보고 싶었던 것을 도전하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게임이 아니라 생각해요. 그렇기에 다시 꼭 뉴욕으로 돌아가 도전할 거에요.
이번 일을 통해 참 많을 걸 배웠어요. 특히 경제관념이 많이 봐꼈어요. 전 노후/투자/저축 뭐 이런 개념 없이 살았는데 다시 일 시작하면 저축을 많이 할것 같아요. 최소한의 것만 가지고 살아가게 될것 같아요. 이 여행의 끝에 전 최소 상거지…. ㅠㅠ 그때까지 제 미션은
1. 이 순간 찌끄러져 있지 않을 것
2. 배우고 싶었던 것들, 가보고 싶었던 곳들 모두 최선을 다해 이룰 것
3. 미래에 대해 너무 불안해하지 않을 것
그렇게 지금 이 백수 생활에 충실할 것.
PS. 지금 @bluemoonjy 님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모르기에 그저 제 입장에서 느끼고 겪은 점들에 충실해 적었어요. 부디 이 글 어딘가에서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찾으셨기를…
요즘 텀블러를 잘 안하다보니 메세지를 이제야 봤어요. 칭찬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책을 꼭 써보고 싶다는 소망은 있어요. 꼭 제 글이 아니여도 책을 만드는 작업에 작게나마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항상 생각해요. 그런날이 올까요…? 🤔🧐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야. 두렵지 않으려고 두렵지 않다 말하는 거야.
사실은 말야…
내 평온한 일상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믿었던 것 만큼이나 불안한 지금의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믿게 될까봐 두려워.
내 스스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상실할까봐…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가면 예전처럼 강하지 못할까봐 두려워.
맘 약해진 내 앞 세상은 너무 강하니까.
이 밤… 누가 나 대신 이 복잡한 마음을 정리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매번 스스로 토닥이기 참 귀찮고 힘들다.



서울. 하늘 공원.
우리 엄마가 4대 독자인 내 남동생을 낳고 “건강히만 자라라”라고 했던 것처럼, 사는 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사회는 무책임하게도 개인에게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라고 떠넘기고 개인은 새파래진 얼굴로 우물쭈물 답을 찾고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반대로 생각하면, 별 쓸모가 없는데도 살아 있으니 더 대단한 일 아닌가.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by 정문정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쓸모가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내게 앞으로 일 년간은 종종 해주고픈 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온한 일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깨져버리는 유리 같은 것인지.”
“네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다. 쉬지 않고 가는 데 있어라고 격려해주면서도, 끝에는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어라며 알아주는 마음. 우리 서로에게 이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 개인주의자 선언 by 문유석
쉬지 않고 달려온 지난 7년의 직장 생활. 쉬어가는 지금의 이 삶이 아직은 꿈같은 요즘.
Switzerland
여행 내내 화창한 날씨가 이어진 건 정말 큰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드디어 비가 내리고야 말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으로 향하던 도중 우박이 내리더니 (7월에 내리는 우박이라니) 케이블카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반동으로 두어 번 크게 휘청거렸다.
한 한국 남학생이 친구와 함께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부모님께 동영상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는 모두의 노력이 깨졌다. 사람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한 아이는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며 천진난만하게 웃어댔다. 개판이었다.
케이블카는 결국 후진했다. 007에 나온 그곳을 코앞에 두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만 경험한 후 내려와야 했다는 사실이 왠지 분했다. 내가 본건 하얀 구름뿐이었으니.
비가 오면 버스나 지하철같이 밀폐된 공간에선 냄새가 고약해지기 마련이다. 눅눅한 공기와 함께 밀려오는 쾌쾌한 냄새. 하필 이럴 때 암내 심한 사람이 옆에 앉는다…. 결국 자리를 옮겼다.
이번엔 앞에 앉은 여자가 한 손으론 책장을 넘기며 다른 한 손으로 코를 파는 두얼 시스템을 선보였다. 저런 건 아무나 못 한다. 적어도 나는 못 한다.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몸이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케이블카의 흔들림을 기억한 감각 그대로.
아름다운 집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부족함 하나 없는 완벽한 집이었다. 가구 하나하나 소품 하나하나에서 럭셔리함이 뚝뚝 떨어지는. 그냥 비싼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여 채운 공간이 아니라 디자인의 가치를 알고 이해한 사람의 집.
그래서 의아했다. 이 정도 재력의 집안인데 뭐가 아쉬워서 Airbnb를 할까.
유럽 여행하며 좋은 건 해가 4시쯤 떠서 9시쯤 진다는 거다. 하루 중 약 16시간이 밝은 이곳에서 내 마음마저 밝아질 것만 같은 하루하루.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불편할 수 밖이 없는 이번 여행…
여전히 밝은 하루를 뒤로한체 집에 돌아왔을 때 열려있던 두 부부의 방 넘어로 보이던 뭔가 에로틱한 풍경. 서로 껴안고 대화하는 모습은 훈훈하지만, 웃통을 벗고 있어 뭔가 민망했던 난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인사도 하지 않은 체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런 날 눈치챘는지 부부는 교양있는 차림으로 잠시 후 저녁 식사를 같이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저녁 식사를 하며 교정기를 차고 있는 여자의 팔을 보며 어쩌다 다쳤냐 물었다. 그냥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그 무심한 질문이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을 말끔히 해결해 줄 줄이야.
여자는 유방암에 걸렸는데 팔로 전이돼서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교정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그 에로틱한 장면은 퇴근하자 마자 옷을 마저 다 갈아입기도 전 남편이 병원에 다녀온 부인의 안부를 묻고 위로하던 장면이었으리라.
통원 치료를 위해 도시 한 가운데로 이사하고선 경제적으로 겸사겸사 도움이 되고자 Airbnb를 시작했던 거다.
멀리서 보면 완벽해 보이는 부럽기 그지없는 타인의 삶… 내가 그들의 집을 보고 그들의 삶을 부러워했듯 누군가는 나의 인스타 여행 사진들을 보고 내 삶이 아름답다 느끼겠지.

Zagreb에서 비행기가 연착됐다. 무려 1시간 40분이나….
나는 뉴욕을 떠나 런던으로 향했었다.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현실과 마주할 만큼 강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살이하는 사람도 있다며 살다 보면 내 잘못이 아닌데도 그렇게 풍파를 겪을 때가 있다며 엄마는 날 위로했지만 그렇기에 난 더욱 날 위로하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했다며 근사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이번 여행은 전부 Airbnb를 사용하게 됐는데 런던에서 집주인이 한국 남자분이셨다. 그분이 내가 떠나기 전날 그러셨다.
외국 살다 보면 2~3년에 한 번 한국 들어가서 부모님 뵙는데 부모님이 90살까지 사신다고 해도 앞으로 10~15번 밖에 뵙지 못하는 거라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지금도 그 대화만 생각하면 가슴 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가슴으로 눈물 흘리는 법을 터득하게 되나 보다.
세상에 슬픈 사연들이 넘쳐 흐른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 천지다.
세상에 슬픈 영혼들이 저마다 아프다 운다.
그러니… 나라도 웃자.
아무일도 아니다.
인생의 가장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어두운 터널이 다가온다. 이 터널은 얼마나 길까. 얼마나 어두울까. 나는 이 긴 어둠을 어떻게 혼자 견뎌낼까.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예전엔 톡 마무리가 ‘뿅’ 였는데 지금은 ‘퉷’이야.”
카페에서 들리던 옆 테이블 대화. 순간 마시던 차 뿜을 뻔. ㅋㅋㅋ
두 달 후면 결혼 20주년이라 여행 간다며 자리를 뜨던 그녀… 그 세월이면 뿅이 퉷이 되나보다.
사는건 개판인데 그 와중에도 웃을일은 생긴다. ㅋ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좋지. 고단한 세상 속 위로가 되어주는 사람. 그래서 연애를 하는 거고. 근데 위로받는 상대에게서 빡침을 받는 과정을 무한 반복하는 것 또한 연애더라고. 그러다 내가 이런 미친 짓을 왜 하고 있나 싶은 순간이 오고.
어제는 공원을 걷다… 이런 여유로움을 더 자주 누릴 수 있던 시절이 떠오르더라. 그 시절 네가 내 곁에 있어 참 다행이었다 싶어 씩 웃었지.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면 행복했던 기억 뿐인데 말야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 웃기지.
혼자서 절대 갈 수 없는 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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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내리는 눈은 괘씸하다.
다 지나갔다 생각했는데 꼭 한번은 다시 들이닥치고 마는 겨울 같아서. 작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삶에 패턴 같아서. 이제는 괜찮겠지 했는데 도무지 추슬러지지 않는 마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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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들 곁에 있으면 불편하다. 내가 불친절한 탓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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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견디지 않고 살아가는 날이 올까?